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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계획을 짜려다가 12월이 다가올수록 싱숭생숭함이 마음에 차올라 노트북을 꺼내들었답니다. 이 마음, 저만 그런 건 아니겠지요. 어느덧 쌀쌀해진 겨울날씨에 넉넉하던 여유도 조금씩 빼앗기는 중입니다.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에게 마음과는 다른 삐쭉 날 선 말들이 나가게 되고, 둥글게 지나갈 수 있는 대인관계에서도 괜히 경계를 세우며 곤두서고 있는 것 같아요.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너튜브에서 사람들의 조언도 듣고, 관련 책도 나름대로 읽어가며 모난 마음을 가다듬으려 노력하지만 사실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의식하고 있는 것 자체가 개선할 의지가 조금은 있는 것이다라며 위안하고 있어요.
전 남에게 민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성격입니다. 따라서 민폐를 '받는 것'도 싫어해요. 내가 해주는 만큼은 아니더라도 배려를 하고 있다는 느낌은 주고 받아야 마음이 편합니다. 그렇다보니 타인의 입장에서 고려해보고 내 입장도 섭섭하지 않게 알아봐주려니 피곤해요. 하지만 예의없이 굴거나 그걸 마냥 받아줘야 하는 게 더 괴로운 것 같아요. 예전보다 이런 게 더 심해진 듯 한데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제 인생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거쳐갔고, 다양한 모양들을 봤기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이제는 결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직장에서는 1인분 역할을 잘 하자라는 마음인데요. 1인분도 못하고 (능력이 없고), 착하지도 않고, 성실하지 않은데 거짓말까지 하는 사람들을 보면 표정관리는 정말 어찌할 수가 없어요. 아예 아는 척을 안하는 편입니다.
원래부터 할말 다하고 하는 성격은 아니였습니다. 미운 말은 아끼고 되도록이면 긍정적이고 두루뭉실한 표현 위주로 사용해 문제가 생기지 않는 방향으로 대화를 이끌어냈죠. 근데 그렇게 20대 초부터 사회생활을 하고 알게모르게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다보니 참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 같아요. 쓸데없는 걸로 트집잡는 것은 하지 말고 나를 포함한 타인에게 불편감을 끼칠 수 있는 게 보이면 그것은 누가 됐든 말을 하고 표현을 하자가 30대가 된 저에게 해 줄 수 있는 방법이였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 마음이 편한가? 물어본다면 그건 또 아니에요. 해야 할 말을 했음에도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더라구요.
어느날 나이가 어린 동료가 저를 봤던 첫 이미지를 말하는 데 이제까지 제가 들어왔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표현이였어요. 표정변화가 없는 편이고, 차갑게 느껴졌다고 하더라고요. 또다른 분은 제가 승부욕이 많아 ~이런저런거에 잘할 것 같다고 지나가듯 말씀해주시기도 했습니다. 물론 처음이 그랬고 알고 지내면서는 걱정도 많은 막내같고, 웃음도 많은 원래 제 모습을 말해주더라구요. 기분이 묘했습니다. 이런 변화가 나에게 좋은 쪽일지 혹은 그 반대일지. 운동할 때 인형처럼 움직임에 집중하고, 일할 땐 눈 앞에 일에 집중하고, 지적해야 할 땐 우물쭈물 거리지 않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지금이기에 그런 표현이 나온 걸텐데. 그런 표현을 들으니 오히려 좋았다고 답했답니다. 착해보이거나 기가 죽어있으면 함부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지금의 내가 자리잡고 이뤄낸 성과가 있다면 바로 위에 묘사된 나의 모습 덕분이라 했답니다. 내가 하고 말지로 지나간 세월들이 꽤 답답하고 효과가 없었거든요. 다만 스스로가 의도한 변화임에도 낯설게 느껴지는 건 저도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모습도 있고 저런 모습도 있는 게 사람이라지만 이제는 뭔가 햇병아리같던 옛날로 돌아가기란 사뭇 어려워진 듯 해서일까요.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일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하구요. 조금 더 들여다봐야 할 것 같습니다.
크게 다투고 헤어졌던 사람과 최근에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었어요. 떨어져 있는 동안 한 사람의 존재를 작게 하고 나라는 메인 캐릭터의 비중을 많이 높여두며 많이 성장했답니다. 그러다보니 그가 이해가 안되는 어떤 행동을 하든, 때때로 알 수 없는 말을 하든 크게 상관이 없어졌습니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인생을 사는 거고, 저는 저에게 집중하면 그 뿐이더라구요. 우리의 미래에 서로가 함께 한다면 참으로 기쁘겠지만 설령 그러지 않는다 할지라도 딱 그정도 인연이였겠거니 하며 지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연인이든 친구든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막연한 '기대'를 하는 순간 그 관계는 상당히 고달파지는 것 같아요. 함께 하는 그 순간에 의미를 두고 존중한다면 그걸로 됐다는 생각입니다. 선을 지키고 그 선을 넘지 않는 한 적어도 함께하는 그 순간은 웃을 수 있다는 것도요. 서운해하고, 다툼이 있으면 바로 싸워서라도 해결해야 하는, 내 마음과 다른 말과 행동을 듣거나 보게 되면 헤어짐을 성급히 내뱉던 모습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감정이 상할 것 같으면 잠시 뒤로 물러나 정리가 되었을 때 조곤조곤 대화 할 수 있게 되었고,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던 그이기에 그동안 나의 일과 운동, 새로운 혼자만의 공간을 채우고 있으니 알아서 들여다보고 찾아오더라구요. (원래 저라는 사람은 상당히 독립적인 성향이지만 본인에게는 기대도 된다고 하길래 100% 기댔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상당히 버거워 했었답니다.) 모든 것엔 정도가 있는 법인데 말이죠. 아무튼 저는 원래의 모습을 조금씩 찾아가고 제 색깔을 창조해가고 있습니다. 원래 컬러에서 톤다운이 되어가는 것 같은데 요즘 저의 컬러가 퍽 마음에 듭니다.
+ 제 몸과 마음을 어루만지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주었던 것은, 재밌게도 필라테스였답니다. 나의 정신과 움직임의 조절, 들이마시고 내쉬는 호흡에 신경을 집중하니 모든 것이 정돈되었어요. 꼭 필라테스가 아니더라도 힘든 상황에 놓여계신 분들은 어떤 형태의 운동이든 시도하시는 걸 추천합니다. 분명 도움이 될 거에요.
연말이 다가오고 인생에서 마주하는 관계에 있어서 크고 작은 변화들이 생기니 내면에서 어떤 말을 건내는지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세상 밖은 언제나 그렇듯 시끌법석 요란하지만 내 안은 그 어느 때보다 차분하고 고요해지고 있음을 느껴요. 물러터졌던 20대를 지나온 지금은 최소한 인생에 적은 만들지 말자라는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불편해하는 게(미운 이유가 타당할지라도) 에너지 소비가 꽤 크더라구요. 피해를 주고 받지 않고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면 관계에 거리를 두는 방향을 가보려 해요. 고작 우주의 먼지인 나이지만 깃털같은 신념과 홀씨같은 목표를 재정비한 뒤 다시금 잘 살아보려 합니다. 앞으로도 가족, 연인, 친구 타인이 아닌 나 스스로에게 선택권이 주어진 삶을 살 수 있도록 계속해서 돌아보고 반성하고 고쳐야 할 것 같아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강한 거라고 하잖아요. 완벽하진 못해도 점차 다듬어갈 수 있는 매끈한 어른이 되고 싶어요. 두서없는 이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도 추운 날 지치지 말고 연말계획 잘 세워서 무탈한 2025 새해를 맞이하시길 바랍니다.